센서란?
사이렌이나 동물의 움직임에 맞춰 움직이는 간단한 센서는 오래 전부터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경된 정보를 바탕으로 이동 상태를 인식하고 기계를 다시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만들어진 것은 최근입니다. 초기의 두 가지 중요한 발명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두 18세기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최초로 등장한 것은 1745년에 에드먼드 리가 발명한 풍차의 꼬리 장식이었습니다
풍차의 돛은 항상 바람의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제임스 와트의 거버너로 원심력을 사용하여 증기 기관의 속도를 자동으로 조정합니다
그것은 장치였습니다. 최근 컴퓨터와 전자제어기술이 발전하면서 이 분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1. 지진계
중국은 지진에 관심이 높은 나라였는데 옛날부터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자세한 지진 기록을 남겼다.
그러므로 최초의 지진계를 만든 민족이
중국인이라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그 지진계는
여덟 개의 청동 구슬을 컴퍼스(자석) 주위에 주의
깊게 균형을 잡아 늘어서게 한 것으로 발명자는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이며 지리학자이기도 했던 장형이었다. 지진이 일어나 그 장치가
진동을 감지하면 구슬 중 하나가 굴러떨어져 그것을
보고 진동이 어느 방향에서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전자기에 의해 발생하는 전류를 이용한 최초의
지진계는 러시아의 물리학자 보리스 고리친(Boris
Prince Golitsyn)이 1905년 발명했다.
2. X선
1985년 독일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Wilhelm Rontgen)은
용기에 담긴 음극선관으로 실험을
하다가 실험실 반대편에 있는 화학
물질이 빛을 발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음극선관이 빛을 발하고는 있지만.
을극선관이 용기에 담겨 있으므로 음극선이 용기를
통과하지 못하니 반대편 화학 물질이 빛을 발하는
것은 음극선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그는
아주 우연히 X선이라고 하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선을 발견한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사진 건판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선에
반응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런 발견을 통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물체를 사진 찍을 수 있는
것이 가능해졌다. X선의 발견은 의학 진단 부분에시
하나의 혁명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3. 수중 음파 탐지기
제1차 세계 대전 중, 독일 잠수함인 U보트가 연합군
측 선박에 막대한 피해를 주어 연합군으로서는
효과적인 잠수함 탐지 시스템을 고안해 내는 것이
굉장히 시급한 일 가운데 하나였다. 처음에는
잠수함이 내는 소리를 잡는 수동 탐지기를 만들어
실험해 보았지만 별로 신통치 않았는데, 그 뒤
프랑스 과학자 폴 랑주뱅(Paul Langevin)이
압전기에 의해 발생하는 초음파 펄스를 사용하여
물체를 탐지하는 휠씬 우수한 장치를 개발해 냈다.
이 장치는 잠수함의 엔진이 정지해 있더라도
선체에서 반사되어 되돌아오는 메아리를 잡아
잠수함의 위치를 파악하고 어디를 공격하면
좋을지를 정확하게 알려 주었다.
4. 레이더
영국 정부는 1935년 지도적인 과학자였던 로버트
워트슨 와트(Robert Watson-Watt)에게 적의
비행기를 하늘에서 쏘아 떨어뜨릴 수 있는
살인 광선'을 만들 것을 요구했다. 와트는
살인 광선을 만드는 기술은 없지만, 공습
전에 경보를 내는 장치라면 만들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만들 수 있는가를 한 장의
종이에 적어 주었다. 그로부터 몇 달 만에
세계 최초의 레이더(Radio Detection and
Ranging) 시스템이 탄생했다. 3년 동안
설치된 레이저 기지국들은 1940년 벌어진
브리튼 전투(Battle of Britain) 당시 영국 공군이
독일 공군보다 휠씬 우세한 위치에 설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줌으로써 영국의 해안을 방어했다.
5. 자동 변속기
최초의 완전 자동 변속기, 하이드라마틱 드라이브는
1939년 엔진 기술자 톰프슨(Earl A. Thompson)이
발명했다. 이 발명 이래 미국에서는 자동차에 자동
변속기를 다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이 새로운 장치는
1940년형 자동차 올스모빌에
처음으로 장착되었다.
6. 이진수
수 체계의 단위의
10이 아니라도 좋다는
생각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1600년대에
활약한 곳프리트
라이프니츠(Gottfried Leibniz)
는 논리학과 이진수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1세기 뒤에 조지 불(George
Boole)이라는 영국의 수학자가 기호 논리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했는데 이것은 지금도 이진법 계산에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7. 입력 장치
초기 컴퓨터는 수동 스위치나 천공 카드 혹은 천공
종이테이프에 사용자가 특수 키보드에 타이핑한
입력 내용을 받아들였다, 정보를 컴퓨터 프로세서에
직접 입력시킬 수 있는 전자 키보드는 1950년대에
개발되었다. 1960년대 컴퓨터 화면이 개발되면서
사용자가 어면 내용을 입력하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1960년대 말 미국의 기술자 더글라스 엥겔바트가 발명한 마우스는 개인 컴퓨터가 대중화되면서 1980년대 중반까지 많은 사람이 사용했다
8. 컴퓨터
최초의 숫자 처리용 기계는 1642년 위대한 프랑스의
과학자 블레즈 파스칼이 19세의 어린 나이에 발명한
기계식 계산기이다.
다이얼을 돌려서 계산기에 숫자를 입력하면
표시창으로 결과가 나타났다. 서로 맞물려 있는
기계가 계산을 하는 방식이었다. 덧셈과 빨셈은
정확했으나, 그 당시에는 계산기의 필요성이 적었기
때문에 계산기 사업은 실패하였다. 기계식 계산기는
그후다시 개발되었지만 컴퓨터와 달리, 아직
결과를 저장하거나 계산 외의 다른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1833년 영국의 발명가 찰스
배비지가 그러한 기계가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해냈고, 그 모험적인 발상으로 그는 '컴퓨터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받게 되었다.
배비지는 여러 방식으로 숫자를 처리할 수 있도록
서로 맞물린 기어와 레버를 배열하고 계산기에
명령을 입력할 수 있도록 카드에 구멍을 뚫어 기계를
설계했다. "해석 기관이라고 불린 이 기계가
발명되었다면, 대수 문제를 풀기가 한절 수월했을
것"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전자식 컴퓨터가 출현한 것은, 많은 발명품이
그랬듯이 전쟁의 위협이 계기가 되었다. 배비지의
원리가 바탕이 되었으나 움직임이 둔한 기어와 레버
대신 빠른 진공관을 사용하여 컴퓨터를 만들었다.
콜로서스라고 불린 최초의 컴퓨터는 2차 세계 대전
중에 연합군이 독일군의 암호 에니그마를 해독하기 위해 1943년 영국에서 제조한 것이었다. 이것은
당연히 2차 세계 대전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콜로서스는 사실 암호 해독만을 위해 사용되었다.
최초의 일반 컴퓨터는 1946년 미국에서 완성된
에니악(ENIAC)이었다. 에니악에는 1만 9,000개의
진공관이 있어 열을 많이 발산했고, 그 크기도
엄청났다